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후성유전학을 통해 자녀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Epigenetic changes are chemical reactions that alter how hard or easy it is for the DNA to be read and translated for making proteins essential for cells to function. / © www.nichd.nih.gov
《Nature Genetics》 3월 15일호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불량한 식단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DNA의 변화 없이 난자와 정자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생물이 생애(生涯)에서 얻은 획득형질이 비유전적으로 대물림(non-genetic inheritance)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행연구들은 '정자가 후성유전학적 인자(epigenetic factor)를 전달한다'고 제안했지만, 그런 효과가 난자에서도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학자들은 한동안 '부모의 생활방식과 행동이 후성유전학을 통해 자녀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제안해 왔다. 즉, DNA나 (염색체 속의) 단백질에 일어난 화학적 변화(chemical modification)가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지만, 유전자의 시퀀스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대물림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부모의 식습관이 자녀의 비만 및 당뇨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 과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임신 전 일어난 후성유전학적 변화」보다 「임신기간 또는 자녀의 생애초기에 일어난 부모의 행동」을 탓해야 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이러한 쟁점을 우회하기 위해, 독일 환경보건연구센터의 페터 후이펜스 박사(내분비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마우스에게 3가지 먹이(고지방식, 저지방식, 표준식) 중 하나를 6주간 먹였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고지방식을 먹은 마우스에게서 비만과 내당능손상(impaired tolerance to glucose)이 나타났는데, 이 두 가지 현상은 2형당뇨의 초기징후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세 가지 먹이를 먹은 그룹에게서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IVF)을 시킨 다음, 그 배아를 건강한 대리모에게 착상했다. 그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만약 자손에게서 신체형질이나 행동의 변화가 관찰된다면, 그것은 난자나 정자를 통해서만 전달되었을 것이다." (선행연구에서는 IVF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성유전학적 대물림의 원인을 아버지 쪽에서만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발생이나 양육을 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번 연구는 어머니의 유대관계, 먹이제공, 마이크로바이옴과 같은 교란요인(confounder)들을 배제하도록 설계되었다"라고 킹스칼리지런던의 팀 스펙터 박사(유전역학)는 논평했다.
인공수정에서 태어난 새끼가 성장한 다음 고지방식을 먹였더니, 살찐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들은 체중이 증가하거나 당불내성(glucose intolerance)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모가 모두 뚱뚱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번 연구는 '고지방식을 먹은 마우스에게서 나온 난자와 정자가 만날 경우, 새끼의 대사변화가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식생활이 부가효과(additive effect)를 발휘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로메인 바레스 박사(분자생물학)는 논평했다.
성차(sex difference)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연구에서는 새끼의 성별에 따른 차이가 보고되었다. 즉, '비만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딸들은 체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더 높은 데 반해, 아들들은 당불내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식생활이 아버지의 식생활보다 자녀의 대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역학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라고 후이펜스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이사벨레 만수이 박사(신경유전학)는 성차가 골치아픈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IVF에는 난자를 호르몬으로 자극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난자의 대사를 변화시킨다. 이로 인해 뚱뚱한 어머니의 난자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져, (최소한 부분적으로) 연구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지적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이번 연구에서 뚱뚱한 부모의 자녀들은 고지방식을 먹었을 때 체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저자들은 '자녀들이 정상적인 조건에서도 체중이 증가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후성유전학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부모가 위험인자에 노출된 경우, 그 영향은 자녀들이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에도 나타난다'고 하는데 말이다."
만약 이번 연구결과가 재현된다면, 다음 연구과제는 '형질이 부모에서 자녀로 전달되는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다. 현재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유전자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은 두 가지로 생각되고 있다. 첫 번째 메커니즘은, 그것이 DNA의 화학적 변화, 즉 메틸화(methylation)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짧은 RNA 사슬, 즉 microRNA(miRNA)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 DNA와 함께 전달된다는 것이다. 독일 연구진은 지금까지 뚱뚱한 마우스와 건강한 마우스에게서 채취한 난자와 정자의 RNA 전사체(RNA transcript)에서 메틸화 패턴의 차이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새끼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의문은 '기간(period)'이다. 부모가 자녀의 대사에 악영향을 미치려면 평생 동안 조심해야 하나, 아니면 인생의 특정 기간에만 조심하면 되나? 이번 연구에 의하면, 마우스가 어른이 된 후에 과식해야만 새끼의 대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