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혈구(blood cell)엔 이식해도 변하지 않는 '고유의 시계(intrinsic clock)' 같은 것이 있다고 미국의 한 대학연구팀이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이 시계는 인간의 노화를 제어하고 혈액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인류의 꿈인 획기적 '노화 억제'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일 수 있다.
7일(현지시간) 보도자료 전문매체 '유레칼러트(www.eurekalert.org)에 따르면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의대의 부교수이자 세포생물학자인 마쓰야마 시게미 박사 팀이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학술지 '에이징 셀(Aging Cell)' 에 발표했다.
혈구란 혈액 속에 떠다니는 세포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세 가지로 나눈다. 사람의 혈액 1㎣엔 적혈구가 450만개(여성) 내지 500만 개, 백혈구가 6천~8천 개, 혈소판이 25만~35만 개 있다.
연구팀은 연령 격차가 큰 '기증자-수용자(donor-recipient )' 조합을 염두에 두고 백혈병 환자에게 이식된 건강한 기증자의 혈구에서 '세포 나이(cellular age)'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젊은 기증자의 혈구는 나이 든 사람에게 이식해도 원래 나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역으로 성인 기증자의 혈구를 어린아이에게 이식해도 결과는 같았다. 기증자 혈구의 이런 내재적 나이는 이식 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마쓰야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이른바 '젊음의 샘(fountain of youth)'에 관한 것"이라면서 "혈구가 인간 노화의 마스터 시계(master clock of human aging)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혈구는 세포 나이를 측정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DNA 메틸화(DNA methylation)의 후생적 패턴(epigenetic patterns)을 유지했다. 이식된 혈구의 DNA 메틸화 나이가 수용자 혈액에 여러 해 노출된 후에도 기증자의 원래 나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혈구 기증자와 수용자의 나이 차이가 최대 49세까지 났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쓰야마 박사는 "혈구가 나이를 기록하는 계시원 같은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DNA 메틸화란 CpG 염기서열 중 주로 시토신(cytosine) 염기에 일어나는 메틸기 공유결합 변형을 말하는데, 메틸화 정도가 높을수록 전사 억제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세포 나이의 미세 측정은, 생물통계학자로 연구에 참여한 캘리포니아대의 스티브 호바스 박사가 맡았다. 그는 혈구 DNA에서 발견된 353개의 개별 메틸화 위치를 이용해 세포 나이를 세분화했다.
혈구 샘플은 '케이스 종합 암센터'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백혈병 연구 센터 등에서 확보했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성과는, 혈구의 노화 시계가 세포 안에 내재하고, 유형이 다른 세포와의 상호작용으론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실험증거(experimental evidence)를 처음 찾아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현재 이 노화 시계의 재설정 방법을 알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혈액암 세포의 DNA 메틸화 패턴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주목한다.
마쓰야마 박사가 '고장 난 시계'라고 표현한 혈액암 세포는 나이 측정값에서 큰 편차를 보인다. 예컨대 실제로 50세인 환자의 세포 나이가 5세 또는 200세로 나온다는 것이다.
마쓰야마 박사는 "혈액암 세포의 특정 유전자가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일 수 있다"면서 "그 유전자를 찾아내면 시계를 재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