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제약산업과 학술기관에서 모인 과학자들에 의하면, 예방접종(Immunization)은 약물내성감염의 등장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약물내성 슈퍼버그와의 전쟁에서 소홀히 해온 핵심 무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백신을 이용하여 저항성의 전파를 막는 것이다."
약물내성 감염이 전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공중보건 기관들은 내성세균의 등장을 막기 위해 주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고, 기존 항생제의 남용(overuse)을 줄이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전세계의 학술기관과 제약사들에 의하면, 미생물학자와 백신 개발자들은 백신을 방어전략으로 사용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7월 6~7일 벨기에에 있는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캠퍼스 와브르(Wavre)에서 열린 회의에서, 연구비 지원단체와 규제기관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이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백신은 항생제내성(AMR: antimicrobial resistance)과 싸우는 전략의 한 축(軸)이 되어야 한다"라고 이번 회의를 주최한 GSK 백신사업부의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리노 라푸올리는 말했다.
글로벌 연구비지원 단체들 중 일부는 이 문제를 이미 납득하고 있었다.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애니타 자이디는 이번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때마침 AMR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데 적용할 우선순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백신의 이점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사냥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왔지만, 지금껏 실망스런 결과를 얻었다"라고 GSK의 감염병연구 담당 부사장 헬렌 스틸은 말했다. 그녀는 이번 회의에서 "여러 제약사들이 실시한 200가지 프로그램을 검토해본 결과, 신약개발을 위해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샅샅이 뒤졌지만 새로운 항생제는 하나도 건지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새로운 항생제 탐색이 계속되는 가운데, 많은 연구들은 '백신은 AMR을 막는 데 이점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즉, 백신은 항생제내성 사례를 줄임으로써 약물내성 병원균의 등장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신을 사용할 경우 미생물이 증식하거나 진화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2000년대에 가장 유행하는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에 대항하기 위해 백신이 도입된 것을 예로 든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폐렴백신은 폐렴 사례를 감소시킴과 동시에 전방위 항생제(예: 페니실린)에 저항하는 감염의 숫자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참고 1). "200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폐렴백신을 도입했을 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참고 2)"라고 화이자의 백신담당 부사장 제임스 와실은 말했다.
심지어 인플루엔자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백신도 항생제 남용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의사들은 인플루엔자 때문에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회세균 감염(opportunistic bacterial infection)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인플루엔자 백신은 이러한 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GSK의 글로벌 보건경제연구소장 니콜라스 반 데 벨데는 이번 모임에서 미발표 연구결과를 공개했는데, "2011~2014년 유럽에서 GSK가 제조한 인플루엔자 백신을 사용한 결과, 백신 접종 후 인플루엔자에 걸린 어린이들은 증상이 경미하여 다른 감염증에 대한 항생제 사용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와 폐렴에 대한 기존 백신을 널리 보급함과 동시에, 다른 감염에 대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백신은 저항성을 거의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항생제보다 우위에 있다. 왜냐하면 항생제는 감염이 시작된 후에 투여되는데, 그때는 미생물의 밀도가 높아져 새로운 내성균이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백신은 감염을 초기에 진압하므로 그럴 염려가 없다"라고 영국 이스트앵클리아 대학교의 데이비드 리버모어 박사(미생물학)는 말했다.
데이터 드라이브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보건당국자들로 하여금 그런 목적(내성세균 등장 억제)의 백신 보급을 더욱 늘리게 하려면, 백신이 AMR을 억제할 수 있음을 입증한 증거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 이번 모임에서, 제약사 대표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관련 데이터를 모두 수집하여 공개하기로 결의함과 동시에, 내성세균의 전파를 모니터링하는 데이터를 새로 수집하기로 했다.
기존의 백신이 저항성 감염을 막는 데 의외의 혜택을 주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7월 10일 《더 랜싯》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뉴질랜드에서 B형 뇌수막염(meningitis B)이 발발한 후 대규모 백신접종 캠페인을 벌였더니, (항생제 내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난치성 임질(참고 3)을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참고 4). 이는 아마도 뇌수막염과 임질을 초래하는 세균이 근연관계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백신이 감염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항생제내성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증명함으로써, 제약사들은 정부와 보건단체들로부터 새로운 백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예: 시장 보장)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WHO에 전략적 자문을 제공해온 의 백신 전문가 데이비드 세일스베리는 말했다. "우리는 백신 사용 확대에 대한, 강력하고 증거에 기반한 사례를 좀 더 많이 수집해야 한다"라고 그는 역설했다.